#9. 마지막 여름에게
2025. 9. 3.

 

🌻  첫 번째 수요일 #9. 마지막 여름에게

 

 어느덧 9월입니다. 더위의 기세는 아직 꺾이지 않았지만 9월이 되니 가을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지네요. 여름을 배웅하고 가을을 마중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적습니다.

 

 숫자 9. 아홉이라는 말에는 묘한 기운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9월이 찾아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요즘 저는 아홉수에 대해 생각해요. 스물아홉 여름, 그러니까 내 20대 마지막 여름이 가는 구나.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나름 이번 여름은 잘 보낸 것 같으니 남은 20대도 잘 보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붙들고,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다시 돌아올 계절도 돌아오지 않을 시절도 차곡차곡 정리해보며 오늘은 여름 편지를 써보려 해요.

 

 

 

 

마지막 여름에게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을 보고 있어. 어떤 숲의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고 해. 햇빛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란 걸 먼저 알아차린 나무는 힘껏 줄기를 뻗고 가지와 잎을 키워내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나무는 빛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삶을 살아야만 하지. 가려지지 않기 위해서, 자라나기 위해서. 몸을 비틀고 비스듬한 자세로 묵묵히 버티는 게 그 나무의 성장인 거야. 빛을 받아야 자랄 수 있는데 자라지 못하면 빛을 받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세계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면 늦여름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에도 마음이 쓰여.

 

 마음이 쓰이는 일과 마음을 쓰는 일의 차이를 아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마음은 마음껏 쓸 수 있어서 마음이라는 말을 하더라. 나는 그 말을 의심하면서 떠오르는 말을 삼켰어.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인데.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단어와 문장처럼 마음도 쓰이는데. 아무튼, 요즘엔 곧게 자라지 못한 나무를 보면 마음이 꼭 그러더라.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나무처럼 나는 비스듬하게 서 있는 사람이라서. 미묘한 불균형을 떠안고 자라난 사람이라서.

 

 그게 뭐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어. 사람은 자신과 닮은 무언가를 보면 움직이는 마음을 지닌 존재잖아. 그냥 그런 거야. 그래서 나는 나무 그늘 아래에 있어. 그림자라는 말 대신 쓸 수 있는 단어가 있어서 좋다. 어두운 부분을 일컫는 그 단어가 품고 있는 평온함과 서늘함이 공평하게 좋다. 그늘이 나무의 모습을 빼닮은 게 좋다. 너는 좋아하는 게 많아질수록 좋아지는 계절인 것 같지 않니?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어. 여름이 좋다고 소리 내어 말해본 건 작년 여름이 처음이었나. 왜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마음껏 쓰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좋아하는 일 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적당히 해왔던 것 같아. 그랬던 나는 20대의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에서야 깨달았어. 여름은 있는 힘껏 즐기고 마음껏 만끽해야 제맛인 계절이라는 걸.

 

 너의 여름은 어때? 네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 여름 뒤에 ‘보내다’라는 동사를 써서 그런지 네 생각을 해서 그런지 계절이 아닌 한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이야. 슬퍼하진 않으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계절은 보내주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거니까. 마중도 배웅도 모두 안녕이라는 말을 쓰는 거니까.

 

 안녕, 잘 지내. 여름을 잘 보내.

 

 

 

 

안미옥 시집,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여름잠

 

 

 아주 열린 문. 도무지 닫히지 않는 문.

 나는 자꾸 녹이 슬고 뒤틀려 맞추려 해도 맞춰지지 않았던 내 방 문틀을 생각하게 돼. 아무리 닫아도 안이 훤히 보이는 방. 작은 조각의 침묵도 허락되지 않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주 사적인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아서.

 네 문을 닫아보려고 했어. 가까이 가면 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비틀어진 틈으로 얼굴을 밀어넣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되었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가진 것은 모두 문밖에 나와 있었고, 나는 그게 믿어지지 않아서 믿지 않으려 했다.

 춥고 서러울 때. 꿀 병에 담긴 벌집 조각을 입 안에 넣었을 때. 달콤하고 따뜻했어. 꿀이 다 녹고 벌집도 녹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 녹아도 더는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는 거야. 하얗고 끈끈한 껌 같은 것이. 그런 밀랍으로 만든 문. 네가 가진 문은 그런 것 같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검은 돌. 네가 준 돌을 볼 때마다 단 것이 떠올라. 돌은 겹겹이 쌓인 문이고, 돌 안에 켜질 초를 생각한다. 내내 초를 켜려는 사람이 있었다. 초를 켜면 문이 다 녹는데, 자꾸만 그것을 하려는 너에게. 나는 조언을 해. 그건 다 내게 하는 말이야. 모두 나 자신에게 하는 말들뿐이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

 잠시 죽었다가 깨어나는 삶과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는 삶.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어서 자꾸 깨어나는 것 같아. 마지막 인사는 마지막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마지막이 올 때까지 하는 인사일까.

 따뜻한 물로 손을 씻을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하더라.

 

 안녕, 잘 지내. 여름을 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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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187 안미옥 시집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처럼, 이 시는 저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여름을 잘 보내라는 말로 끝나는 이 시는 초여름에 건네는 말 같기도 하고 늦여름에 건네는 말 같기도 한데요. 오늘은 여름을 보내주는 늦여름의 마음으로 읽고 싶어요. 여름이 지나가도 남아 있을 온기를 생각하면서요. 

 

 

 어쩌면 사람의 발걸음을 멈춰세우는 건 굳게 닫힌 문이 아니라 도무지 닫히지 않는 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닫아도 안이 훤히 보이는 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딛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절도 시절도 잘 보내고 마침내 우리는 그렇게, 잘 지내야겠지요. 삶도 계절처럼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덧붙이자면, 앞에서 제가 적은 '마지막 여름에게'는 '아주 열린 문. 도무지 닫히지 않는 문' 같은 저의 지난여름들을 생각하며 적은 글이에요. '아주 사적인 시간'으로 들어가서 스스로의 내밀한 과거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마음에 오래 남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겠죠. 마음이 쓰이는 그러한 일들을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 것으로 저는 지금 다행히 글도 마음도 마음껏 쓰며 여름을 잘 보내주고 있네요. 

 

 

 

 

 

차세대 - NEON ALLERGY HERO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주면서, 차세대의 NEON ALLERGY HERO라는 곡과 함께 이만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난달, 밴드 차세대가 2집 <명랑하게>를 발표했는데요. 무려 열여섯 곡이 수록된 앨범이고, 그중에서 저의 최애 트랙은 바로 이 곡이랍니다.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딱 한 번뿐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떠올려보면 차세대는 명랑하게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밴드라고 생각해요. 음악과 함께 앨범 소개글의 일부를 옮겨 적어요.

 

 

친구야.
우린 명랑함이 좋아.
이 앨범에 담긴 사랑으로
세상도 명랑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우리 명랑하게, 여름을 잘 보내주어요.

2025년 9월 3일

정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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