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되풀이되는 계절에
2025. 4. 2.

 

🌸 첫 번째 수요일 #4. 되풀이되는 계절에

 

 추위가 지나가고 꽃이 피는 4월의 첫 번째 수요일입니다. 저는 따뜻한 날씨에 힘입어 많이 걷고, 보고, 들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지난 편지에서 늘어놓은 그리움의 말들이 계절과 함께 새로운 원동력으로 변화한 것만 같습니다.

 

 나아갈 힘. 저는 반복에서 힘을 얻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생활 습관 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게으른 인간이거든요.) 아무리 반복해도 좋은 것이 있죠. 걸어도 걸어도 좋은 길, 가도 가도 좋은 곳. 들어도 들어도 좋은 음악, 읽어도 읽어도 좋은 글. 봐도 봐도 좋은 사람. … 당신에겐 어떤 반복이, 되풀이되는 좋음이 있나요.

 

 

 떠올리긴 어려울지 몰라도 분명 많을 거예요. 수없이 반복해도 좋은 일들이 세상엔 많아요. 먼저, 들어도 들어도 좋은 노래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때 저는 노래 하나를 반복 재생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질리게 될까 봐, 좋아하는 마음이 닳아버릴까 봐 걱정이 됐어요. 모든 것은 닳지 않나요. 그게 형체 없는 마음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걱정이죠.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을 두려워하다 진심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지난날의 저 자신이 우스워질 만큼, 지금 제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이제는 입이 닳도록 좋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  여유와 설빈

 

 ‘여유와 설빈’은 ‘여유’와 ‘설빈’으로 이루어진 부부 포크 듀오입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보러 갈 수 있는 공연은 모두 갈 정도로, 봐도 봐도 보고 싶은 무대를 만들어내는 분들이죠. 가끔은 신기해요. 제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저에게 여유와 설빈의 음악과 노래와 무대는 꼭 바다 같아요. 바다는 파도를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저마다 다른 감동이 되어 밀려오지 않나요. 그래서 바다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아요. 파도 소리가 있으니 말을 보탤 필요도 없죠. 생각해 보면 진짜 좋은 것은 처음 만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말이 그치고 숨이 멎을 것만 같죠. 그 순간을 지나간 뒤에 기록할 때, ‘형언할 수 없는’이라는 글자를 저는 일기장에 자주 적습니다.

 

 이어서, 긴 말 대신 최근 ‘스페이스 공감’에 방송된 영상 하나를 전해요. 여유와 설빈 3집 <희극>의 2번 트랙 ‘너른 들판’입니다.

 

 

 

스페이스공감 유튜브 _ [여유와 설빈 명반 Live] 너른 들판

 

 

 ‘너른 들판’이 수록된 <희극>은 EBS 스페이스 공감이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선정한 앨범인데요. 선정위원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을 직시하는 가사와 그 현실 너머의 이상을 표현하는 듯한 화음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앨범’과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혼성 듀오 여유와 설빈의 3집 [희극]. 포크라는 장르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어법과 스타일의 노래로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크게 움직인 앨범은 드물었다. - 선정위원 박정용

 

 

 

여유와 설빈 3집 희극

 

 선정위원의 말처럼, ‘너른 들판’, 그리고 <희극>이라는 앨범은 고통스러운 ‘삶’을 ‘직시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마침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읽고 또 읽은 시집이 이런 점에서 닮아있군요. 고통스러운 삶을 직시하는 것으로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고 돌보는, 읽어도 읽어도 좋았던 양안다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입니다.

 

 

 

 

 

 

📗  양안다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

 

 양안다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어요. 긴 시들이 많은데 모든 시가 너무나도 좋아서, 시 한 편을 한 번 읽고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 다 읽었다고 생각했을 땐 박동억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에 감탄하면서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민음의 시 271 양안다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

 

 

고백보다 고백을 주저하는 입술이 더 진실한 순간이 있다. 시선을 피하는 시선처럼, 방향을 상실한 손처럼, 진실 앞에서 그것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 말을 중단하게 만드는가. 양안다 시인은 세상의 잔혹과 냉혹을 비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아에 관한 한 자기 환멸과 죄악까지 드러낸다. 다만 그가 머뭇거리는 순간은 타자에 대하여 말하려 할 때이다. 사랑을 고백하기 직전의 눈동자처럼, 울음을 삼키려는 두 뺨의 안간힘처럼, 눈썹과 어금니와 혀가 타인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선다. 그의 시를 이루는 인상은 바로 침묵하는 입술에 맴도는 떨림, 그 떨림의 신비이다. 그 떨림은 레비나스가 “얼굴의 후퇴(retrait)”라고 정의한 것, 즉 자신의 눈동자로 타인에게 상처 주거나 상처받기를 피하는 배려의 몸짓을 닮았다.

- <해설: 언어의 소실점(박동억 문학평론가)> 중에서

 

 

 

 맞습니다. 머뭇거리는 입술, 그 떨림의 신비를 간직한 시집이었습니다. 말을 주저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어떤 사라짐의 공간인 ‘숲의 소실점’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같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너른 들판’과 ‘숲의 소실점’은 어딘가 닮아 있는 듯합니다.

 

 

 언젠가 고명재 시인의 글에서 ‘소실점은 사라지는 점이지만, 두 선이 만나는 점이기도 하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상실과 만남이 공존하는 공간이 소실점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양안다 시인이 그려내는 숲의 소실점은, 상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상처 입은 이의 곁을 지키는 화자가 도달한 지점입니다. 소실점이라는 사라짐의 공간 속에 마음의 폐허를 끌어안는 사랑이 분명 존재해요.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을 쥐고

 

 

 

 당신이 금요일을 사랑해서 금요일에 만났다

 금요일이면 같이 커피를 마시고

 골목을 걷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지

 저번 금요일에는 그림을 그렸다 내가 빈방을 스케치하는 동안

 왜 사람을 그리지 않는 거죠, 당신이 말했다

 다음 금요일에는 무엇을 할까

 아내를 지독하게 사랑했다던 화가의 전시를 본다

 아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대

 화가는 신을 찾았을까

 우리는 갤러리를 걸으며 화가의 미래로 향한다

 저기, 저 새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요

 교회가 세워진다

 악마를 그렸구나 불구덩이에 화가의 미래가 있어

 그런데

 우리 미래는 어디에 있어?

 

                             *

 

 누가 액자의 간격 같은 걸 정하는 걸까

 나는 관람객을 관람하고 있을 죽은 화가의 영혼을 상상했다 그는 떠나는 관객을 웃으며 마중했으나 뒤돌아서자마자 표정을 굳힐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빠질 것이다 그들이 관심 갖는 건 그의 감각뿐이었으므로

 

 죽음 뒤에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숲 너머로 또 다른 숲이 보인다면

 빛 한 점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다면

 가라앉고 가라앉은 곳에 평행 세계가 있다면

 

 죽고 또 죽고 싶은 이야기들

 

 어느 날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음악 없는 세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과 예정된 희극을 축하하며 건네는 술과 사랑하는 이에게 오트밀 한 줌을 사 주기 위해 헤매던 수많은 거리와 상대의 몫까지 챙겨 오는 우산과 산문을 읽고 난 후의 슬픔과 말라 버린 붓과 양을 치는 목동과 마른 어깨와 마른 어깨, 그리고 고립, 그리고 언젠가 작별

 진심은 어디에 놓여 있나

 만남과 마음은 왜 시작되나

 한 사람의 일상을 뒤흔드는 존재는 왜 언제나 사람이었나

 왜 그 사실이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는 끝내

 슬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가

 

 그러나 영화는 먼 곳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가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

 

 우리의 어느 금요일, 공연이 절정에 다다를수록 

 피아니스트는 속도를 높여 손가락을 움직였다

 당신은 숨이 막힌다고 했다 저 연주를 들으면

 어딘가 견딜 수 없어져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릴 것만 같다고,

 자꾸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는 도중에 공연장을 빠져나오고

 

 당신은 공원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을 들여다보자 왜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말했다. “마음을 주고 싶었어요. 그게 잘 안 돼서 나는 나의 마음을 탓했어요.”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었다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에게 웃어 보이고

 슬픔을 감추며

 마음을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나는 나를 억누르며 말하고 싶었다

 마음, 그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의 극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축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라고……

 나는 당신과 눈을 맞춘 채

 그 어둠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신은 나의 두 발을 묶지

 다가갈 수 없도록

 멀어질 수 없도록

 

 어두워

 이곳은 어둡고

 이미 내 몸은 붕 떠 있는 듯해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자꾸만 멀어지지

 

 가라앉은 채로 걷는 꿈

 너는 계속 멀어진다

 숲의 소실점을 향해

 숲에서 숲으로

 더 깊은 숲으로

 너는 빛을 밀어내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

 

 어느 날 남자는

 그동안 자신과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주머니 안에서 오랫동안 삭아 가고 있었을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남자는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으로 가득한 대기실의 책장, 그중에 남자가 뽑아 든 것은 경주마에 관한 그림책이었다 책을 펼치자 무수한 말들이 얼굴 위를 짓밟으며 달려갔고 남자는 표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 남자가 메모한 구절은 이러했다

 ‘잠어는 눈에 품은 빛의 무게를 가늠하려고 바닥을 쳤던 것이다. 그 한 번의 침몰이 평생을 헤엄치게 만든다. 빛의 열쇠를 가졌으니 꼬리는 점력을 끊고 한없이 떠오를 수 있다’

 

 

                             *

 

 당신을 집까지 부축하던 금요일은

 오래 걸었다 정말 오랫동안 헤맸다 누구보다 잘 아는 길을

 오래오래 돌아 걸었다

 그러나

 

 비가 쏟아지는 동안

 나는 망가진 우산을 손에 쥐고

 

 누가 우리의 간격을 정하는 걸까

 

 영화는 가끔 현실 같은데

 현실은 자주 영화 같은데

 

 당신과 있으면 나는 날 정돈하고 싶어지지

 그러나 당신은 아닐 거라는 불안 속에서

 

 나의 방에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예쁜 사람이 아닙니다

 표정을 잘 가꾸기 위해 애쓸 뿐

 아무도 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폭우가 오고 있나요 

 

                             *

 

금요일에 만나요

금요일에 웃어요 내가 먼저 가 있을게요

마지막 미래,

그런 건 다 읹어요

나는 발목을 끊어 냈는데

아직도 바깥에는 숲이 우거지고 있나요

우리 금요일에 만나요

나는 걷다가도 빛에 빠지니까

너와 함께

너와 함께

 

 당신은 아무런 의심 없이 손을 흔든다 우리의 다음이 기약되어 있다는 듯이 그러나 다음은 먼 곳에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는데도 당신은……

 

 

 


 

 좋은 일들만 반복된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우리는 재해와 재난이 되풀이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한 번의 침몰이 평생을 헤엄치게 만들어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어둠이 있어요.

 진정 그런 게 삶이라 해도 우리는 마음의 폐허를 파수해요. 상처를 직시하고 상실의 곁을 지켜요. 때론 섣부른 다가감이 아닌 머뭇거리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들판에서도, 숲에서도, 너머의 빛이 기약되어 있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요.

 

 

 되풀이되는 계절에
 두 손을 모아

 정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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