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일요일
2024. 8. 12.

 

 

 

01

안전안내문자는 폭염이라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라고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물 마시라고 휴식하라고 했다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안부전화를 하지 않았다 이미 야외 활동 중이고 물 대신 커피를 마셨으며 쉬지 않고 생각했다 원래 안전안내문자가 부모님께 안부전화 하라는 말도 해주나 안전 안내 안부 그리고 안온한 주말

 

 

02

발을 편하게 하고 싶어서 산 신발은 발을 더 불편하게 하고 나는 그래서 신발이 더 마음에 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마음에 든 것이지만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 같다는 말도 노들서가 구석진 자리 나무로 만든 의자 불편해서 편한 자리 난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이 좋아

 

 

03

시와 소설을 오가며 책을 읽었다 어차피 기억날 일은 기억난다는 말이 기억났다 필사도 좋지만 읽기에 더 열중하고 싶어서 정말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만 귀퉁이를 접는다 이걸 도그지어라고 한다지 개의 귀 모양 같다고 꽤 귀엽다 오늘은 시보다 시를 읽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읽다 보니 거의 모든 시에 도그지어를 해버렸다 무의미하게 늘어난 부피만큼 마음이 부풀었다

 

 

00

다시 일기를 매일 쓰려고 애쓰고 있다 일기를 매일 쓰기 위해선 대충 써야 한다고 믿는다 일기를 대충 쓰기 위해서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일종의 산문시라면 어떨까 나는 마침표 없이 쓰인 산문시를 좋아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동화 같아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면 매일 시 쓰는 사람도 될 수 있을까

 

 

04

어제는 머리를 잘랐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늘 가던 미용실이 사라졌다는 걸 안 뒤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갈 곳이 없어졌는데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아졌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장발이 하고 싶어서 머리를 잘랐다 이렇게 쓰니까 시 같다 꿈꾸고 싶어서 꿈을 이루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이미 많이 자랐다 웃자라다라는 단어의 뜻풀이를 읽었다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많이 자라 연약하게 되다 쓸데없다는 붙여 쓰고 쓸 데 있다는 쓸데없이 띄어 써야 한다 실없는 생각은 실처럼 이어진다 이렇게 쓰이는 일기는 시 같아서 시가 아니다 실은 이렇게 짧게 자를 생각이 아니었는데 기분이 썩 좋아서 머리가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망설였다 어떤 질문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야 비로소 답할 수 있다

'수의 기록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이름은  (1) 2024.10.18
악몽  (0) 2024.09.05
새 계절 앞에서  (4) 2024.09.05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0) 202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