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나무
2024. 10. 15.

문학동네시인선 197 문보영 시집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방한 나무

 

 있잖아. 지금부터 내가 지어낼 세상에는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어.

 

 실내 온도를 좀 높일까요?

 

 이런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아. 대신 사람들은 방한 나무에 의지하지. 방한 나무는 스스로 엄청난 열을 내. 이 나무는 실내에서는 자랄 수 없고 길바닥에서 살아야 해. 실내에서 키우면 자살해버리거든. 온기가 필요한 인간은 나무 앞에 줄 서서 기다리지, 나무를 껴안으려고. 나무는 죽을 때까지 키가 크고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 사람들은 출근길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공항에 가는 길에, 퇴근길에, 이별하러 가는 길에 나무를 껴안아, 따뜻해지려고. 죽으러 가던 사람도 차에서 내려 방한 나무를 껴안아, 죽을 힘을 내려고. 나무는 추운 인간을 멈추게 해. 그래서 이 나라에서 포옹ighlek과 멈추다ighlek*은 같은 단어야. 너무 추운 날에는 인간들이 죄다 나무에 들러붙어 아무것도 안 해. 나무에 들러붙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미납 공과금, 덜 마른 빨래, 저녁거리, 타이어 공기압, 빚 갚을 능력, 막힌 변기를 떠올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나는 존재했던 시간보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 내가 없을 때 더 나다운 게 아닐까? 먼지 같은 생각들. 그동안 열은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전달되고 사람은 온기를 느낀다.

 

 인간을 껴안고 있을 때 방한 나무가 하는 상상: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멈추면
 존재들은

 허공을 향해 쏟아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옴니크어, 옮긴이.

 

 


저는 시를 씁니다. 소설도 쓰고 논픽션도 씁니다만 아마도 시인일 겁니다.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저곳에서 이야기에 관한 영감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노트에 끄적이곤 하죠.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굳이 소설로 써야 할까, 이대로 놔두면 안 될까?’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방치한 글은 응고되어 시가 됩니다. 소설 쓰기의 귀찮음에서 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 시에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많습니다.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중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면 방한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합니다. 방한 나무라는 것이 어딘가에 정말로 존재할 것만 같습니다. 때로는 비현실이 현실보다 현실적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논리를 갖출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을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자주 찾아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말이에요. 문보영 시인이 말한 게으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제가 카피를 쓰는 사람이 된 것도 게으름 때문입니다. 방치한 글이 응고되어 시가 된다는 말이 오늘 같은 날 포옹ighlek처럼 느껴집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품은 이 시가 좋아서, 옮겨 적었습니다. 따뜻해지려고요.

 

 먼지 같은 생각들이 켜켜이 쌓여갑니다. 사라지지 않고 응고되기를 바라며 멈춰있던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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