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시인선 213 임승유 시집
생명력 전개

들어올린 발꿈치의 우아함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마치 나중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 알기 위해
나중까지 생각해야 했고 정말 나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선반에 올려놓았던 상자를 내리려고 발꿈치를 들어올릴 때
멈춘 것 같다. 한참 된 것 같다. 이런 우아함은 설명할 길이 없으므로
그때 나한테 왜 그런 거야.
한번 꺼내놓으면 갈 데가 없어지는 말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나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제 한 말. 마음을 앞질러 나온 말.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된 말. 내가 먼저 잊게 될 말. 정말 나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뱉은 말과 삼켜낸 말. 한번 꺼내놓으면 갈 데가 없어지는 말. 수많은 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연말입니다. 어지럽혀진 마음을 정리하려 상자를 내리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설명할 길 없는 우아한 모습으로 굳어진 사람을 생각합니다.
갈 수 있는 곳이야 지천이겠지만 갈 데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겨울 길거리에 멈춰 설 때.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하고 미뤄둔 마음들의 형체가 점점 또렷해집니다. 바삐 움직이던 몸이 정지하면서 초점이 잡히는 것이겠지요. 한참 된 것 같은 멈춤에서 이제는 빠져나오려 합니다. 발꿈치가 시립니다.
내년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