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높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2024. 9. 13.

무겁고 높은, 김기태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소설

 
 
 소설 보다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소설을 쓰신다. 맞아, 소설 읽기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었지.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소설 모두를 좋아하지만 나의 최애작은 '무겁고 높은'.
 
 

 

 

[신춘문예 2022/단편소설 당선작]무겁고 높은

땅에 붙인 두 발바닥. 그것이 시작이다. 바벨을 쥘 때는 엄지를 먼저 감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감싼다. 무게가 실리면 엄지가 짓눌리지만 그래야 더 꽉 쥘 수 있다. 놓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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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역도에 내려놓는 동작은 존재하지 않았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끝이기 떄문에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송희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들지 못하던 것을 들면 물론 기뻤다. 하지만 버리는 기분은 더 좋았다. 더 무거운 것을 버릴수록 더 좋았다. 온몸의 무게가 일시에 사라지는 느낌. 아주 잠깐, 두 발이 떠오르는 것 같은. 송희는 그 느낌을 비밀로 남겨두었다.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버리는 것과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점수 같은 건 없다. 들었거나 들지 못했을 뿐. 심판들이 깃발을 들겠지만 사실 판정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받아내는 순간 알 수 있다. 선수 자신이 가장 먼저. 
 나는 그 100킬로그램을 오래 들고 있을 거야. 심판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내가 그걸 곧 버릴 거라는 걸, 버릴 수 있다는 걸 자랑할 거야. 그리고 다들 봤다 싶으면 내던질 거야. 망설임 없이, 부술 듯이 말이야.

 

 

 방해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 사실 언제나 없었지. 적어도 역도대 위에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도 말리지도 않았어. 송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들었거나, 내가 들지 못했을 뿐. 
 이상하게 말이야. 송희는 그렇게 말하며 바벨에 원판을 더 꽂았다. 그것은 100킬로그램이 되었다. 
 이제 아무도 밉지가 않아.

 
 


오늘의 무게 

오늘의 무게가 내일의 영광.


 내일의 그 무엇도 아닌 오늘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 송희가 버린 것 떨어뜨린 것, 그리고 끝내 들어올린 것과 버릴 수 있었던 것. 꿈이나 희망 따위의 것이 아닌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버리기 이전에 들어야 한다는 역도의 룰은 고등학생 송희의 오늘만큼이나 가혹하다. 송희에게는 들어올린 것보다 들어올리지 못한 것, 들어올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불가항력. '70킬로그램, 80킬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들어올릴 수 있는 건, 오직 바벨이 바벨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송희는 단호해졌다. 아니. 이건 영광이 아니야. 이건 미래도 아니고 꿈도 희망도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송희는 들어올렸다. 내일의 영광이 아닌 오늘의 무게를.
 

 

 


송희는 바벨을 쥐었다.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내 손안에 있는 내 것. 내 몫의 약속.
 
 소설은 우리를 희망적인 결말로 데려가진 않는다. 단지 송희가 역도를 정말로 그만두던 그날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송희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삶의 여러 순간에서 무게를 들어올리지 못해 떨어뜨릴 것이다. 다만 왠지 모르게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느낌은 딱딱하고 차갑지만 우리의 손안에 있는 우리의 것이다. 어떤 날에는 짐 같고 어떤 날에는 힘 같은 것의 무게. 버리고 싶지만 빼앗기거나 떨어뜨리기엔 싫은 것의 무게. 수많은 오늘의 무게 속에서 모든 지금이 은총처럼 빛나길 바라며 책에 수록된 다른 소설 속 문장을 데려와 본다.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겼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롤링 선더 러브> 중에서)

 

 

 

 

 

+ 09/19 <무한화서>를 읽고 덧붙이고 싶어진 문장
지금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허위의식이에요. 우리가 내버리는 것들 안에 진짜 우리가 들어 있어요. 그중에는 보기 싫어 버리는 것도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버리는 것도 있어요. 언제나 버림받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세요.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을 구제하는 게 문학이에요. (무한화서, 이성복 시론 중에서)

 

 

 송희가 역도를 시작한 건 버리고 싶은 오늘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무게를 버티고 나선 끝내 버렸겠지. 보기 싫어 버리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버리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버린다고 버려지지 않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들어올리지 못해 버리는 데에 실패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버린 만큼 채워진 자리도 있었을 것이다. 버린 것과 버림받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이상하게 말이야. 송희는 그렇게 말하며 바벨에 원판을 더 꽂았다. 그것은 100킬로그램이 되었다.
 이제 아무도 밉지가 않아.

 

 이제 아무도 밉지가 않다는 말이 어떤 결의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들어올리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송희는 마음을 정한 듯하다. 그렇게 송희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을 구제하는 한 편의 문학으로 완성된다. 100킬로그램처럼, 완성된다.

 

 

 

 


지금을 사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

 
모든 것이 계산으로 예측되는 시대. 
지금의 세상은 미래를 짜맞추고, 
사람들은 미래로부터 역산하여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을 사는 것이 될 수 있을까. 단정지은 미래는 우리의 가능성을 작게 만들 뿐이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를정도로 무언가에 몰입하고,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열정을 쏟아 온 사람들만이 시간을 바꿀 수 있다.

- 세이토 신문광고 (2024) 카피
*출처: 인스타그램 정CD의 카피노트(@qy.jung)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우연히 읽은 카피, 세상의 모든 송희에게 전하는 응원 정도로 함께 적어두고 싶다.
 
 
 
 


평범함이 얼마나 다양하고 비일관적이며 풍부한 것인지

 그의 소설이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것은 차이를 두루뭉술하게 흐리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소설은 평범함의 의심스러움을 전제하고, 그것의 다양성과 비일관성을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므로 각각의 소설이 평범함을 구체적으로 다루더라도, 그것은 ‘특정한’ 평범함을 규범처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규범’ ‘정상’ ‘평균’ 같은 억압적 개념들에서 평범함을 떨어뜨려놓을수록, 평범함이 얼마나 다양하고 비일관적이며 풍부한 것인지 볼 수 있게 된다. … 김기태의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서 간과하는 평범함을 조명한다. 그것의 비일관성과 다면성을 단순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해설: 평범한 자는 들어오라 _ 이희우 문학평론가)

 

 

평범해서 더욱 특별한 이야기.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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