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의 일 _ 오하림
2024. 11. 27.

카피라이터의 일 - 오하림

 

 

지우고 지워서 완성한

카피라이터의 일 _ 오하림

(흐름출판)

 

 

0

 초록과 기록이라는 이 공간에 카피라이팅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일 이야기나 카피 관련 아카이빙을 여기에 올리지 않을 사람인데... 그 생각은 거의 유지되어 왔지만 이 책 이야기로 '카피라이팅' 카테고리의 첫 게시물을 올려볼까 한다.

 

 

1

 책을 읽는 효용에 대해, '책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 것이 기억난다. 평소에 우린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 또한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주기적으로 산문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때그때 다르고 내 마음대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 롱블랙에 올라온 하림님의 글을 읽고, 이 사람의 일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기에 책을 샀다.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망설이지 않고 산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척 즐거웠다. 다른 유명한 CD님들의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2

 한 달 뒤면 카피라이터로 일한 것도 2년이 된다. 나는 나의 직업과 지금 하는 일을 애정하고, 할 수만 있다면 오래 해보고 싶다. 그렇기에 다른 선배 카피라이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주변에 친한 카피라이터가 (직장 동료를 제외하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친한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이 미디어 관련 직무이거나 광고 일을 하지 않거나, 제작이 아닌 기획 일을 하거나 이 셋 중 하나이며, 회사엔 선배로 삼을 만한 연차의 카피라이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3

 일과 관련된 내 고민의 해답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카피라이터 혹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책 뒷부분엔 <일에 대한 다양한 답>이라는 제목으로 10개의 질문에 대한 다양한 카피라이터들의 대답이 실려 있다. 다가오는 일요일부터 혼자 제주에 다녀올 예정인데, 그곳에서 나의 대답 10개를 적어보기로 한다.

 

 

일에 대한 다양한 답

1. 카피라이터를 어떤 직업이라 정의하고 있나요? 혹은 어떻게 정의하면 설명하기 쉬울까요?

2.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고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3.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달고 그동안 무엇을 했고, 일에 대해서 어떤 것을 느꼈나요?

4. 카피라이터에게는 어떤 재능이 필요하다 생각하나요?

5. 일을 하며 어떤 것들이 날 힘들게 했나요?

6. 일을 하며 어떤 것들이 날 버티게 했나요?

7. 과거에는, 또 지금은 어떤 재미/목표로 일을 하고 있나요?

8.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혹은 갔으면 하나요?

9. 당신의 카피라이터 인생을 지탱하는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10. 카피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4

 나 포함 주변 사람들을 보면 광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광고인이 쓴 책을 잘 사지 않는 것 같다. 이미 광고라는 세계에 속해 있기에 책을 훑어보아도 '사서 읽을 정도의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른 읽고 싶은 책들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특별함으로 포장하지 않은 '진짜 카피라이터의 일 이야기'라는 점이 이 책을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카피라이터의 일이 그런 거 아닐까. 책에서 언급한 김새별 카피라이터의 말처럼 '말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엮어 넣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종종 카피라이터 일이 고독하다고 느껴질 때면 이 책을 펼쳐 보아야겠다.

 

 

5

 지금까지는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두서없이 적은 것 같다. 읽으며 필사한 책 속의 몇몇 문장들을 여기로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카피라이터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 섬세한 문장들이 참 좋다. (역시나 세상에 멋진 카피라이터는 많고 그것은 카피라이터 일의 자극이자 축복이다)

 

 

 


 그러니 카피라이터는 자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칠 사소한 것에 눈이 가는 기질, 카피라이터의 첫 번째 조건이 있다면 ‘굳이’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이미 주변에 재료는 가득하므로 안테나를 높여 별것 아닌 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섬세한 눈을 장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혹 누군가가 내가 쓴 문장을 보고 “저건 나도 쓰겠네.”라고 한다면 씩- 웃으며 칭찬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글을 써본 사람은 압니다. 쓱 봐도 읽기에 쉬운 글이 가장 쓰기에는 어렵다는 것을요.

 

 

 비효율적일 거라 생각했던 발로 뛰는 이런 시간들이 오히려 저에겐 가장 효율적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카피를 발로 쓰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되어보는 일은 그 사람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내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안목’이라는 것이 어쩌면 일하는 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실력이 안목을 따라가도록 저만의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을 안목과 실력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으로 쓰려고 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려면 덜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더라구요.

 

 

 너무 확신하지도 않고, 너무 나의 능력을 의심하지도 않는 것. 그 밸런스가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단 한 가지 확신하는 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오로지 절반의 확신과 절반의 의심만이 스스로를 나아가게 할 뿐입니다.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중략)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하며 살아야 그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

- 주성철 <데뷔의 순간> 속 박찬욱 감독의 글

 

 

 불안해서 자주 불행했지만 불안 위로 쌓아 올린 소중한 것들이 저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되게 아이러니하죠. 절벽에 매달려 있었던 시간만큼 근력이 생긴 느낌이랄까요.

 

 

 지나친 애정은 곧 재능이며, 누구도 갖지 못할 나만의 필살기가 될 테니까요.

 

 

 옳은 길은 없다

 선택을 옳게 만들어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