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2024. 9. 23.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2024)
이미랑 감독, 김혜진 소설 원작
 
2024년 9월 21일 토요일, 아트나인에서.
 
 
 

같이, 사는, 사람

 가족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은 같이 사는 사람이지만 같이 산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되지 못하고 같이 사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같이 사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 '같이 사는' 일은 누군가에겐 생활 방식에 관한 얘기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삶.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라이프. 처절한 생존의 문제다. 같이, 살기 위해서,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김혜진 작가와 이미랑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딸의 대하여>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타인을 향해 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며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나를 돌보아준 내가 아는 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끝내 온전히 이해할 순 없는 이들의 삶 같은 이야기다. 스크린 너머로 내가 어렴풋이 아는 삶을 목도하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 정은이 늙고 병든 제희를 살뜰하게 돌보는 건 마치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정은이 왜 저렇게까지 제희를 돌볼까. 단지 연민이나 이타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그 행동들이 엄마의 불안처럼 보였다. 딸을 향한 엄마의 불안이 외부로 번지는 거다. 정은의 헌신적인 행동은 어쩌면 누군가를, 특히 딸을 이해하고 싶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김혜진 작가의 말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 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 한줄이야말로 이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향해 지속적으로 다가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씨네21, [인터뷰]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딸, 엄마, 당신, 우리 모두에 대하여)
 

 

[인터뷰]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딸, 엄마, 당신, 우리 모두에 대하

이미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딸에 대하여>는 실로 ‘영화적’이다.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빼어난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지에 대한 훌륭한 모범 사례라고

www.cine21.com

 
 
 

돌보는 사람

위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희를 향한 엄마의 헌신은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딸을 이해해보려는 발버둥 같기도 하다. 영화 속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을 떠올렸다. 살피고, 보살피고, 돌보는 사람이 엄마다. 언제나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이다. 그런 영화 속 엄마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와서 많이 울었다. 
 
 
 
우리말 ‘보살피다'는 ‘살피다'를 품고 있다. 그러니까 살피지 않으면 보살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살피는가? 다가올 시간이 초래할 결과를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보살핌을 우리는 돌봄이라 부른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
 
[발문: 조금 먼저 사는 사람 _ 신형철 문학평론가]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으며, 살피고 보살피면서,
엄마와 그린과 레인이 그렇게 같이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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